한국 AI 개발의 역사 — ETRI에서 뷰노·루닛까지
한줄 요약
1980년대 ETRI에서 시작된 한국 AI 연구는, 2016년 알파고 쇼크를 계기로 국가 전략으로 격상됐고, 2020년대 의료 AI 스타트업 생태계로 꽃피었다.
1980년대 — 기반을 놓다
1971년 설립된 KAIST는 1980년대에 전산학과를 본격 확장했다. 같은 시기, 1976년 설립된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는 전자 교환기 개발로 국가 IT 기반을 닦고 있었다.
1980년대 한국 AI 연구의 주류는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었다. 의료, 법률, 엔지니어링 분야의 규칙 기반 추론 시스템을 만들려는 시도들. 미국과 일본의 유사한 흐름을 뒤따르는 형태였다.
성과보다는 기반 구축의 시대였다. 연구자들을 길러냈고, 방법론을 익혔다.
1990년대 — AI 겨울, 그리고 인터넷 전야
1990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AI 겨울”이 찾아왔다. 전문가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났고, 투자가 급감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신 1990년대 후반은 인터넷 붐의 전야였다. 전산학 인재들은 AI 연구보다 벤처창업과 포털 서비스 개발로 흘러갔다. 네이버(1999), 다음(1995)이 이 시기에 창업됐다.
2000년대 — 포털 AI, 검색 최적화
2000년대 한국 AI 기술 개발의 중심은 포털이었다. 네이버의 검색 알고리즘, 다음의 뉴스 분류 — 지금 기준으로 보면 초보적이지만, 머신러닝 기반의 실용적 AI였다.
학계에서는 딥러닝의 전신 기술들이 조용히 연구되고 있었다. 하지만 주류 자금과 인재는 여전히 검색·커머스·게임에 집중됐다.
의료 AI 연구는 거의 없었다. 전자의무기록(EMR) 도입도 이 시기에 겨우 본격화됐다.
2016년 3월 — 알파고가 모든 것을 바꿨다
2016년 3월 9일~15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5번기 대국을 펼쳤다.
결과는 4대 1로 알파고의 승리. 전국민이 실시간으로 AI가 인간 최고수를 이기는 장면을 목격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국 직후인 3월 17일 긴급 대책 발표에 나섰다. “지능정보사회 국가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AI 연구에 1조 원 투자 계획을 내놨다. 속도가 이례적이었다.
이세돌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그때 처음으로 AI가 저를 이겼을 때 느낀 것은 경이로움이었습니다. 두려움은 나중에 왔어요.”
2017년 — 정책과 스타트업의 교차
문재인 정부 출범 후 AI R&D 투자 계획이 재정비됐다. 2017~2022년 5년간 AI·소프트웨어 분야 2조 2000억 원 투자 계획이 발표됐다.
같은 시기, 의료 AI 스타트업들이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다.
뷰노(VUNO): 2014년 창업. 흉부 X-ray 판독, 심전도 분석, 골령 예측 등 의료 AI 개발. 2019년 식약처로부터 AI 의료기기 최초 허가 품목 중 하나를 받았다.
루닛(Lunit): 2013년 창업. 흉부 X-ray에서 폐결절·폐결핵 탐지 AI 개발. 2022년 코스닥 상장. 현재 전 세계 50개국 이상 병원에 솔루션 공급.
2020년 이후 — 식약처 허가와 제도 정비
2020년, 식약처는 AI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본격 정비했다. 국내 AI 의료기기 허가 건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주요 허가 사례들:
- 뷰노의 뼈 나이 측정 AI (2019, 국내 최초급)
- 루닛의 흉부 X-ray AI (2020)
- JLK의 뇌졸중 AI (2019)
2022년까지 식약처 허가 AI 의료기기는 약 60건, 2025년에는 100건을 돌파했다.
2023년 — ChatGPT 충격과 국내 LLM 경쟁
2023년 ChatGPT 충격은 한국 빅테크에도 직격탄이었다.
네이버: 2023년 8월 HyperCLOVA X 공개. 한국어 특화 대형 언어 모델. 클로바X 서비스로 일반 출시.
카카오: 2023년 KoGPT 후속 개발 발표. 카카오브레인이 언어 모델 개발을 지속.
삼성: 자체 LLM 가우스(Gauss) 개발 공개(2023.11). 스마트폰 온디바이스 AI 탑재.
2026년 현재
국내 의료 AI 스타트업은 100여 개로 추정된다. 영상의학, 병리학, 내시경, 심전도, 피부과 등 전 임상 분야에 AI 기업들이 생겨났다.
과제도 명확하다. 건강보험 수가 적용, 실제 임상 데이터 확보, 미국·유럽 시장 진출. 뷰노와 루닛은 미국 FDA 허가를 취득하며 글로벌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알파고 대국에서 시작된 10년의 여정이, 이제 본격적인 임상 적용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핵심 정리
- 1980년대: KAIST·ETRI 기반 구축, 전문가 시스템 연구 시작
- 1990~2000년대: AI 겨울 + 인터넷 붐으로 AI 연구 침체
- 2016.3: 알파고 vs 이세돌 — 전국민 AI 목격, 정부 긴급 대책
- 뷰노(2014)·루닛(2013): 국내 의료 AI 스타트업의 선두 주자
- 2020년 이후: 식약처 AI 의료기기 허가 체계 정비, 허가 건수 급증
- 2023년: ChatGPT 충격, 네이버 HyperCLOVA X·카카오 KoGPT 경쟁
- 2026년: 의료 AI 스타트업 100여 개, 수가 적용이 다음 관문